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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신앙의 대상을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한 분에게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일신 신앙의 기초가 된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불타는 가시덤불'로 나타나신 하느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탈출 3,14). 그 뜻은 "나는 곧 있는 나다(I am who I am)" 혹은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그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나 하느님은 언제나 존재하여 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것이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시작과 마침이며, 영원하다는 뜻을 지닙니다. 하느님이신 그분은 다른 무엇으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분이십니다. 하느님인 그분이 그 존재의 주체이며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말에 진실성을 보증하는 다른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면 족한 것입니다. 야훼(JHWH)라는 이름이 이렇게 지극히 성스럽기에, 이스라엘인들은 그 이름을 직접 호칭하는 것을 피하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 '하늘', '하늘의 아버지', '그 이름'등으로 호칭하였습니다. 특히 '아도나이'라는 호칭은 그 후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번역될 때 '퀴리오스(Kyrios, 주님)', 도미누스(Dominus, 주님)'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같이 유일 신앙을 갖고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은 삼위 일체적인 신앙 고백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그리스도교는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고백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적 태도에서 다른 유일신 종교들과 구분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삼위일체신안은 무엇일까?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성자·성령은 한 하느님이며 한 주님이신 데, 로서 하나가 아니고 삼일체이신 본체로서 하나이시다. 곧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이 위격(位格) 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이고, 본질이며 실체이시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위격이라는 말을 씁니다. 사람에게 인격이란 표현을 쓰듯이 하느님께는 위격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위격(位格)’은 영혼에 응용하는 한자말입니다. ‘삼위일체,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三位(성부, 성자, 성령)가 완벽히 일치를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 동안 이해했던 창조주 하느님, 구원자 예수님, 협력자 성령님이 세 위격이시지만 단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인간들의 용어로 표현할 때에는, 성 삼위 그 각각의 특성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설명하지만, 우리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지, 사실 하느님은 우리 생각처럼 나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는 교리, 한 본체이신 삼위! 이것이 바로삼위일체신앙입니다. 이 교리의 출발점은 한 분 하느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이처럼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내적 생명을 전해주는 귀한 말씀으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앙과 사랑의 신비이며, 계시된 믿을 교리이기에 우리 이성으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 업적과 구약의 계시 안에 삼위일체이신 당신 존재의 자취를 남겨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성자의 강생과 성령 파견 이후에야 이 계시는 완전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증언과 예수님 제자들의 신앙 체험으로 이 삼위일체 신비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삼위(사랑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 말씀처럼,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하느님도 친히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우리와 하느님을 영원히 묶어주는 끈은 바로 이 사랑입니다. 사랑때문에 하느님은 세상을 살리고, 예수님도 이 세상을 살리고, 제자인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결국은 삼위이신 하느님도 한 분, 세 가지로 드러난 하느님 사랑도 하나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신비는 사람을 창조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이렇게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열어 보이고 내어 주시는 당신 사랑의 신비를! 사도 요한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4,8 참조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세상에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특히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초대 교회에서는 '야훼'의 경칭인 '주님'이라는 말을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동시에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요한 20, 28; 필립2, 8-9). 유대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신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예언자로 보고 있으나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을 갖고 있는 분으로는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의 관건은 예수 그리스도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분이시며 동시에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아들(예수 그리스도), 성령, 아버지의 세 위격으로 나타나는 한 하느님의 인간 구원을 위한 그 대내적 및 구세사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교리는 우리 신앙고백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삼위일체신앙을 요약한 신앙 고백문들을 살펴보면, 먼저 성호경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신비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호경, 그리스도인이 입으로 외우는 기도문 중 가장 짧은 기도이지만, 그 사람이 가톨릭교회 신자임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지이며, 하느님 구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드러내 줍니다. ‘성호경, 첫째,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며, 둘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상기하는 것이며, 셋째, 이 동작으로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광송,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온 세상이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거듭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온 삶을 다해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영광송을 바칠 때에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표시로 머리를 깊이 숙인다. 성호경영광송이 의미하는 삼위일체하느님의 신비는 일치의 신비로서 우리가 믿는 교의의 핵심이며 전부가 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의 충실한 요약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요약해 놓은 사도신경(信經),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이 됩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하느님의 서로 다른 칭호들을 세 분(삼위)’에게 부여함으로써, 구별되면서도 한 분이신 하느님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아버지는 첫째 분에게, ‘아들주님은 둘째 분에게, ‘거룩함과 은 셋째 분에게 각각 붙여 드렸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행위-봉사-선물또는 사랑-은총-친교, ‘하느님-주님-성령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우리는 전례 안에서도 늘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데, 먼저 세례 때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우리는 세례로써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미사 시작 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하며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합니다. 교회는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예수님의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의 신비를 묵상한 후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삼위일체 신비를 묵상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사람을 창조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과연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고심하던 어느 교부가 하루는 바닷가를 산책했다.

그런데 꼬마가 웅덩이를 파고 바닷물을 붓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

그러자 그 꼬마는,

내가 저 넓은 바닷물을 이 작은 웅덩이에 넣을 수 없듯이

그대가 하느님의 그 크신 신비를

인간의 지력으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는 묘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결국 알 수 없는 것이 신비라는 셈이다.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 안에 내재하는 삼위일체의 구조를 발견하고는

정신(지성)마음의지, 로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활동한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창세기부터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삼위의 신비가 없는 곳이 없다.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부활, 승천, 성령 강림에 이르기까지 모두 삼위의 일체,

즉 삼위의 공동 협력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삼위의 신비를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삼위일체적인 삶의 특징은 바로 기쁨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래서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으로 살 때 우리의 삶은 조화롭고, 사랑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우리는 기쁨과 활력이 넘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삼위일체적인 삶이며, 삼위일체 안에서 사는 삶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 인류에게 사랑의 모형이 된다.

 

신학자들은 성부, 성자, 성령을 구별하여 인간에게 역사 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그 위격이 셋이다.

위격이란 말은 지능을 가진 가장 완전한 개체의 최고 자주성이다.

이렇게 완전한 세 위격이 한 분의 하느님의 실체를 이룬다.

이것은 인간 지능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개념이다.

(/ 태양은 한 개지만 그 덩어리가 있고, 빛이 있고, 열이 있다. 태양 덩어리가 존재하면서 빛과 열이 있듯이 하느님의 성삼위의 관계도 영원으로부터 세 위격을 갖추신 한 분 하느님이시다.)

성부는 창조 사업을 하셨고,

성자는 창조된 인간이 범죄를 범했을 때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사업을 하셨고,

성령은 성자에 의해 구원된 인간을 더욱 거룩하게 하는 성화사업을 하신다.

 

이 세 위격이 평등하고 서로 일치를 이루어

하느님이라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다.